나는 지금 몹시 짜증이 나있다. - 백합이란. (백합 15제)



 알게 되어버렸다. 보면 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눈치가 월등히 빠르긴 하다. 똑똑한게 이럴 땐 쓸 대 없는 것 같다. 정말 쓰잘떼기 없는 영특함이다. 장난이 아니다. 난 지금 몹시 짜증이 난다.

“왜 그래?”

“뭐가.”

“.......”

난 몹시 짜증이 나있다. 옆에 있는 애 때문이라고 할 수 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 도 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해서 분명 험상궂은 얼굴 일 것이다. 궂이 숨길 필요도 없고. 짜증나는 여름이다. 매미소리에 환장 할 것 같다.

“나 간다.”

“...응?”

초란이가 가버렸다.

[떼레레레뎅-]

점심시간이 끝났다. 머릿속엔 뭔가 가득 차있다. 초란이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 가버렸고,난 짜증이 나있는데!! 걔 때문이 아닌데, 미안한 마음도 드는 한편 그 애 때문이야!! 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내 머릿속은 엉망이다.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10분이 지났는데도 선생님은 안 들어오시고, 시끄럽고, 난 복잡하고, 시끄럽고, 난 복잡하고, 시끄럽고, 시끄럽고, 덥다. 20분쯤 지나니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사회시간이지만 사회선생님은 급한 사정으로 조퇴했다고 하며, 어쨌든 자신은 수학 선생이니 수학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모두들 자기하고 싶은 대로, 지 맘대로 해 댄다.

 생각 해 보면 그리 짜증 날 일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응원 해 줘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난 초란이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 붙임성 없는 애가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게 눈에 선했다. 어제만해도 그 놈 앞에서 얼굴 벌개지고, 그 쿨한 애가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어버버대는 꼴이란. 크크크크크크킥킥킥킥킥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울고싶었다. 그놈을 뻥 차 저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날려버리고 몸을 땅에 묻어 분무기로 물을 흠벅 뿌려버리고 싶었다. 그래, 초란이 한테 좋아하는...!!!!! 으아야랴뉴뇨!!! 왜?! 어째서?!! 그 편범하디 평범한 놈에게 마을울 주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옆에 똑똑하고 영특한 내가 있는데! 왜? 왜? 왜.....? 왜지? 응? 나는 여자라서? 응, 나는 여자다. 치마를 입고 있고, 짧긴 하지만 보통 남학생은 기를 수 없는 길이이다. 초란이도 여자고, 내친구고... 나는 지금 왜 짜증이 나있는거지? 초란이가 그놈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뭔갈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왜 짜증이 났을까? 노트를 꺼냈다.

[초란이=내친구] [초란이->그놈]

이 공식에서 내가 화내야 할만한 점은 눈씻고 봐도 찾아지지 않았다. 나는 왜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걸까?(앞에 선생님이 몇 분 정도 더 바뀐 것 같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중이기에.) 생각 끝에 이러면 확실히 설명이 가능한 것을 눈치챘다.

1.내가 평소 초란이를 짝사랑 중.

2.그놈이 아주 못되먹은 놈이라 친구인 내가 결사반대.

2번은 그놈이 평범하긴 해도 나쁜 놈 같진 않다. 설명이 가능한건 1번이긴 한데 그 공식은 성립 할 수 없다. 나와 초란이는 둘 다 여자니까. 그리고 딱 부러지게 말 할 수 있다. 내가 초란이를 그런식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말도 안 된다. 스킨쉽이 좀 많은 편기긴 하지만, 친구니까. 친구니까 손잡는 거라던지, 팔짱이라던지, 어깨동무, 껴안기.....등등은 하고 싶지만...이건 친구니까 당연한거고....

“뭐하냐, 끝났어. 집가자.”

“......응?”

“가자고.”

웃고있었다. 초란이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 싹 사라졌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엉망이였던 오늘하루가 삭제 버튼을 누른 것 같이 싹 사라졌다.

“뭐야, 나 혼자 간다.”

“...앗, 으헝헝 언니 같이가요옹옹옹.”

관계고 나발이고 초란이는 내 친구고, 나를 불러준다. 그놈따위보다 나를 더 좋아 할 지도 모르는 일이고. 지금은 이대로 좋으니까 좋은게 좋은거다. 그건 그렇고 같이 가지. 냉정한놈 .그래도...흐헝헝 걷는 것도 어쩜 저리 조신하게 걸을꼬. 앗, 앞에!!

“..앗! 저..저.. 미..미안.!!!”

........그치만 우선 저놈은 짜증난다.
비켜! 비키라고! 뭔데 부딧힌건 넌데 초란이가 사과하고 있는거냐고.

나는 지금 몹시 짜증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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